♣ 빚(負債)
한때 가위에 자주 눌렸다. 그때 본 귀신이
얼마나 생생한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무섭다는 생각은 안 든다.
정말 무서운 건 바로 ‘빚 귀신’이니까.
최근 빚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몇 년간
'영끌족(최대한의 대출을 받아 집을 사거나
주식 등에 투자한 사람)', '빚투('빚내서 투자'의
줄임말)'와 같은 신조어들이 난무했다. 빚을 내
무리하게 집을 구입한 사람들은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엄청난 고통에 시달린다. 이들에게는
매월 꼬박꼬박 갚아야 하는 빚이 귀신보다
무서울 수 있다.
때문에 빚을 독촉하는 사람을 '채귀(鬼)'라
부른다. '빚 귀신'이란 뜻이다. 이는 빚이
그만큼 무섭기도 하거니와 한번 빚을 지면
없애기 힘들다는 사실을 암시하기도 한다.
밤이면 모습을 드러내는 귀신처럼 채귀는
원리금 상환일에 어김없이 나타나며 심지어
채무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따라붙는다.
돈을 빌릴 때는 빌려주는 사람이 천사나
부처처럼 보일지 몰라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그 얼굴이 지옥의 왕이라는
염라처럼 보일 것이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고리채를 가리켜 '염라대왕 빚'이라 칭한다.
영어권에서는 인정사정없이 먹이를 물어뜯는
상어에 빗대어 '론 샤크(Loan Shark)'라
부르기도 한다.
비단 집을 사기 위해 빚을 낸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에서 ‘마이너스 통장’
이라는 채귀를 자주 만난다. 마이너스
통장을 쓰면 월급날이 되어도 이상하게
잔액이 플러스로 돌아서지 않는다. 마치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다. 빚 귀신을
물리칠 묘수가 필요한 시대다.
♣ 조병익/ <돈이란 무엇인가>
한국은행 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