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쥐수염 붓 ♣
/ 손택수 -
왕희지와 추사가 아꼈던 붓이다
족제비나 토끼털로 만든 붓도 있지만
그 중에도 으뜸은 쥐수염붓
놀라지 마라,
명필들은 쥐 수염 중에도
배 갑판 마루 아래에 사는 쥐에게서
가장 상품의 붓이 나온다고 믿었단다
배가 삐걱거릴 때마다
수염을 쫑긋거리는 쥐
파도가 치는 대로
머루알 같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먼지 한 점 떨어지는 소리도 놓치지 않고
쭈뼛 일어설 줄 아는
그 수염이 최상의 붓이 되는 것이다
쥐에겐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지만
소심하다, 신경이 그렇게 날카로워서야
어찌 살겠느냐
핀잔을 듣는 날이 많지만
불안한 눈망울을 반짝반짝
수챗구멍을 들락거리는 한 시절
쥐 수염 같은 것이 내게도 있어
듬뿍 머금은 먹물로
일필휘지하고 싶은 때가 있는 것이다.
♣ 손택수 시집『나무의 수사학』에서-
◐ 소과(蘇過)의 서수필(鼠鬚筆)
나라의 창고에서 곡식을 축내고,
쥐구멍에는 먹다 남은 썩은 고기 있네.
太倉失陳紅,狡穴得餘腐。
옛날 승상 이사(李斯)를 한탄케 하고,
또 정위 장탕(張湯)을 노발대발케 했네.
既興丞相嘆,又發廷尉怒。
살은 찢겨 주린 고양이에 먹히고, 수염은
갈라 흰 토끼털과 섞여 붓이 되었네.
磔肉飼饑貓,分髯雜霜兔。
서가에 놓이면 칼과 창처럼 굳세고,
종이에 쓰니 용과 뱀이 달리 듯하네.
插架刀槊健,落紙龍蛇騖。
사물의 이치를 쉽게 따지기 어려우니,
때 잘 만나면 곧 좋은 시절 되데.
物理未易詰,時來即所遇。
담을 뚫을 적에 얼마나 비천하였는가,
붓에 의탁하여 아름다운 명예 얻누나.
穿墉何卑微,托此得佳譽。
▶《소과(蘇過)의 시 서수필(鼠鬚筆)》
소동파(蘇東波)의 아들 소과(蘇過)가 지은
‘쥐 수염으로 만든 붓(鼠鬚筆)’이라는 시
제목이다. 혹자는 소식(蘇軾=소동파)의
시라고도 한다. / 작성자: 몽촌-
☞ 서수필(鼠鬚筆)
쥐 수염으로 만든 붓이라는 뜻으로,
쥐는 미물이지만 수염으로 만든 붓이
명필을 만나면 명예를 얻는 것처럼
인재도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때를 만나는
것이 중요함을 표현한 내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