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그런 저녁이 있다

岡邨(강촌) 2022. 6. 30. 16:42
      ♣ 그런 저녁이 있다 / 나희덕 -​ 저물 무렵 무심히 어른거리는 개천의 물무늬며 하늘 한구석 뒤엉킨 하루살이 떼의 마지막 혼돈이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바라보려 한다​ 뜨거웠던 대지가 몸을 식히는 소리며 바람이 푸른빛으로 지나가는 소리며 둑방의 꽃들이 차마 입을 다무는 소리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들으려 한다​ 어둠이 빛을 지우며 내게로 오는 동안 나무의 나이테를 내 속에도 둥글게 새겨 넣으며 가만가만히 거기 서 있으려 한다​ 내 몸을 빠져나가지 못한 어둠 하나 옹이로 박힐 때까지 예전의 그 길, 이제 끊어져 무성해진 수풀 더미 앞에 하냥 서 있고 싶은 그런 저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