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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 정호승

岡邨(강촌) 2017. 3. 7. 13:34

      까닭 / 정호승 내가 아직 한포기 풀잎으로 태어나서 풀잎으로 사는 것은 아침마다 이슬을 맞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랑이를 적시며 나를 짓밟고 가는 너의 발자국을 견디기 위해서다 내가 아직 한 송이 눈으로 태어나서 밤새껏 함박눈으로 내리는 것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싸리 빗자루로 눈길을 쓰시는 어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눈물도 없이 나를 짓밟고 가는 너의 발자국을 고이 남기기 위해서다 내가 아직도 쓸쓸히 노래 한소절로 태어나서 밤마다 아리랑을 부르며 별을 바라보는 것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를 사랑하기엔 내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