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끊긴 전화 ♣/ 도종환 -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다. 말이 없었다.
잠시 그렇게 있다 전화가 끊어졌다.
누구였을까 깊은 밤 어둠 속에서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가
두근거리는 집게손가락으로 내 가장
가까운 곳까지 달려와
여보세요 여보세요 두드리다 한 발짝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
그냥 돌아선 그는 누구였을까
나도 그러했었다, 나도 이 세상
그 어떤 곳을 향해 가까이 가려다
그만 돌아선 날이 있엇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항아리 깊은 곳에
버린 것을 눌러담 듯
가슴 캄캄한 곳에 저 혼자 삭아가도록
담아둔 수많은 밤이 있었다.
그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채
나 혼자만 서성거리다 귀뚜라미 소리
같은 것을 허공에 던지다 단 한마디
전하지 못하고 돌아선 날들이 많았다.
이 세상 많은 이들도 그럴 것이다.
평생 저 혼자 기억의 수첩에 썼다
지운 저리디 저린 것들이 있을 것이다.
두 눈을 감듯
떠오르는 얼굴을 내리닫고
침을 삼키듯 목끝까지 올라온
그리움을 삼키고
입술 밖을 몇 번인가 서성이다
차마 하지 못하고 되가져간
깨알같은 말들이 있을 것이다.
한빨짝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