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블로 네루다 -
이제 열둘을 세면
우리 모두 침묵하자.
잠깐 동안만 지구 위에 서서
어떤 언어로도 말하지 말자.
우리 단 일 초만이라도 멈추어
손도 움직이지 말자.
그렇게 하면 아주 색다른 순간이 될 것이다.
바쁜 움직임도 엔진소리도 정지한 가운데
갑자기 밀려온 이 이상한 상황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리라.
차가운 바다의 어부들도
더 이상 고래를 해치지 않으리라.
소금을 모으는 인부는 더 이상 자신의
상처 난 손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리라.
전쟁을 준비하는 자들도
가스 전쟁, 불 전쟁 생존자는 아무도 없고
승리의 깃발만 나부끼는 전쟁터에서
돌아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그들의 형제들과 나무 밑을 거닐며
더 이상 아무 짓도 하지 않으리라.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완벽한 정지 속에서
당황하지 말 것. 삶이란 바로 그러한 것
나는 죽음을 실은 트럭을 원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삶을 어디론가 몰고
가는 것에 그토록 열중하지만 않는다면
그래서 잠시만이라도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다면 어쩌면 거대한 침묵이
이 슬픔을 사라지게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이 슬픔
죽음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이 슬픔을.
그리고 어쩌면 대지가 우리를 가르칠 수
있으리라.
모든 것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이제
내가 열둘을 세리니 그대는 침묵하라.
그러면 나는 떠나리라.
▶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본명은 리카르도 엘리에세르
네프탈리 레예스 바소알토(Ricardo Eliécer
Neftalí Reyes Basoalto)라는 긴 이름인데,
아버지의 반대 때문에 필명을 사용하던
그는 추후에 실명을 아예 네루다로 바꿨다.
1920년대 학창시절부터 문학적인 재능을
펼친 네루다는 1950년 국제스탈린평화상,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