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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에서

岡邨(강촌) 2020. 7. 22. 15:03
 
      ◉ 침묵 속에서 / 파블로 네루다 - 이제 열둘을 세면 우리 모두 침묵하자. 잠깐 동안만 지구 위에 서서 어떤 언어로도 말하지 말자. 우리 단 일 초만이라도 멈추어 손도 움직이지 말자.  그렇게 하면 아주 색다른 순간이 될 것이다. 바쁜 움직임도 엔진소리도 정지한 가운데 갑자기 밀려온 이 이상한 상황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리라.  차가운 바다의 어부들도 더 이상 고래를 해치지 않으리라. 소금을 모으는 인부는 더 이상 자신의 상처 난 손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리라. 전쟁을 준비하는 자들도 가스 전쟁, 불 전쟁 생존자는 아무도 없고 승리의 깃발만 나부끼는 전쟁터에서 돌아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그들의 형제들과 나무 밑을 거닐며 더 이상 아무 짓도 하지 않으리라.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완벽한 정지 속에서 당황하지 말 것. 삶이란 바로 그러한 것 나는 죽음을 실은 트럭을 원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삶을 어디론가 몰고 가는 것에 그토록 열중하지만 않는다면 그래서 잠시만이라도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다면 어쩌면 거대한 침묵이 이 슬픔을 사라지게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이 슬픔 죽음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이 슬픔을. 그리고 어쩌면 대지가 우리를 가르칠 수 있으리라. 모든 것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이제 내가 열둘을 세리니 그대는 침묵하라. 그러면 나는 떠나리라. ▶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본명은 리카르도 엘리에세르 네프탈리 레예스 바소알토(Ricardo Eliécer Neftalí Reyes Basoalto)라는 긴 이름인데, 아버지의 반대 때문에 필명을 사용하던 그는 추후에 실명을 아예 네루다로 바꿨다. 1920년대 학창시절부터 문학적인 재능을 펼친 네루다는 1950년 국제스탈린평화상,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이 됐다.